온그라운드 갤러리에서
2015.0117 충주 중원 탑평리 7층석탑
#01
혼자인 상태에 익숙해지면 진정한 나가 눈을 뜬다. 진정한 나를 만나면 비로소 나 아닌 다른 나가 보인다. '남'이란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진정한 나를 가둠으로써 생겨나는 타자의식일 뿐이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을 남이 아니라 또 다른 나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진정한 나가 비로소 내 삶의 전면으로 나서게 된다. 망상자아가 장악하고 있던 자리에 비로소 진정한 나, 우주적 근본자아가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은 좋다. 낯선 곳으로 가야 망상자아가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직 낯선 곳만을 찾아 끝없이 길을 나서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낯선 풍경의 이면에 숨겨진 진면목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부화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찾아갔을 때 자신을 편안하게 만드는 곳이 있으면 마음이 원할 때마다 자주 찾아갈 필요가 있다. 여행지가 아니라 자기 삶의 영역으로 그곳을 확장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이 자기 삶의 영역으로 확장되면 마음과 공간이 하나가 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자기 삶의 영역을 얼마나 넓힐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이 지닌 삶에 대한 열정에 의해 좌우된다. 자기 삶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확장하는 일에 진지한 열정이 없다면 오직 자기 집과 자기 방에만 국한된 답답한 삶을 살기 쉽다. 나에 대한 타자의식도 생겨나지 않고 오직 나라고 믿어지는 망상자아의 틀에만 갇혀 사니 진정한 나의 정체성을 아무리 말해줘도 소용이 없다. 그러니 외롭다, 괴롭다, 슬프다, 힘들다 등 등 인생에 대한 푸념만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은 혼자 살라고 주어진 무대가 아니다. 우리는 평생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 연기를 하며 인생을 살아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배역이 자식일 때는 자식 역할을 하고, 남편일 때는 남편 역할을 하고, 아버지일 때는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하고 세계와 우주를 구성하는 생명체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그 모든 공부의 핵심은 '관계'이다. 가족관계, 직장관계, 친구관계, 이웃관계..... . 그 모든 관계의 출발이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진정한 나를 회복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를 알고, 나를 만나고, 나를 회복해야만 다른 나에게로 갈 수 있는 진실한 소통의 통로가 열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행이 아니다. 일회성으로 스쳐 지나가는 여행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고작 '빛을 보는 일' 뿐이다. 관광(觀光 , sight seeing) 아닌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빛을 보는 일이 아니라 빛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야 집을 떠나는 일, 그리고 길을 나서는 일이 타성과 관성으로부터의 일탈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집을 떠난 이후의 모든 행로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내면의 여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광은 단지 밖을 내다보는 행위에 그치지만 혼자 떠나는 길에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병행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땅 부자가 많다. 몇 만 평의 땅을 가진 사람도 있고 몇 십만 평을 가진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소유한 건 그들의 일상영역이 아니다. 오직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부동산일 뿐이다. 반면 개인 소유의 땅은 한평도 없지만 히말라야를 일상영역으로 만든 사람도 있고 세계를 일상영역으로 만든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의 영혼은 나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광대할 것이고, 그들의 삶은 나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니 삶의 영역을 넓히는 일에 어찌 게으름을 부리겠는가.
-혼자일때 그곳에 간다 / 박상우 - 中에서